건강한 임신도전 - 거짓말 같은 임신 #화학적유산


다 거짓말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다.
남들 한번씩 다 겪어본다고 했다.
한번 잘 됐으니 바로 생길거라고 했다.
금방 잊혀진다고 했다.


다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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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매? 그딴게 뭐임?

확실했다. 홍년이가 올 느낌이 확실하듯 임신도 확실했다. 근데 왜 유산은 예고없이 찾아왔을까?
결혼 2년만에 느끼는 증상이었다. 가슴과 유두가 아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가슴을 슬쩍슬쩍 만져봤다. 아프긴 해도 기분 좋았다. 이 증상이 글로만 익혔던 임신초기 증상이었다.
생리예정일이 지나고 임신테스터기를 하루에 세번씩 해봤다. 확실한 빨간 두줄이었다. 이 기쁜소식을 언제 오빠에게 말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선물처럼 전해주고 싶었다.



그날따라 오빠가 회사 이야기를 했다 .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임신소식을 알려주면 힘을 낼까 싶었다.

"오빠, 나 임신한거 같아."

오빠가 울었다. 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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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만 허락된 희망.

다름이 없는 일상이었다. 출근 전 비누와 산책을 나갔다. 웃기긴 해도 배를 쓰담하며 잘 버티고 잘 크라고 했다.
산책 후 뭔가 이상했다. 울컥하는 느낌이 기분 나빴다. 붉은 혈이 보였다. 불안하고 심장이 뛰었다. 출근길에 정신없이 임신관련 카페에 글을 남겼다.

'임테기 두줄이었는데 피가 나와요.'
_ 안타깝지만 화학적유산 같아요.ㅠ
_저도 그랬는데 지금 애기가 5개월차에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여전히 이 말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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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다 알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고 출근 후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아기집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극초기라 안보일 수 있다고 했다. 피검사가 필요했다. 결과는 3시간 뒤에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뻔히 예상되는 결과를 기다리며 나에게 기적이 있길 기도했다. 평생 운을 쏟아부어도 괜찮으니 그저 기적이 있길바랬다.
그리고 원망했다.

'진짜 나한테 왜이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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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이 맞긴 한데.

아무 잘못없는 의사선생님이 마치 불치병을 진단하듯 힘없는 목소리로 결과를 전해줬다.
"피검사 수치가 임신이 맞긴한데 출혈이 계속되면 자연스럽게 유산이 되가는 과정입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아기집도 생기고 심장소리도 듣는거 아니었어?
세상에 자연스러운 유산이 어디있어.




화학적유산이라고 했다. 너무 흔해서 잘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이 태반인 화학적유산을 난 쓸데없이 알아버렸고 겪어버렸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다. 임신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는, 그냥 생리예정일보다 늦춰진 생리라고 생각하라는 그 정도의 수준이 내 맘과 정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만 난임이고 나만 형편없어 보였다.


# 말처럼 쉬운건 없다.

오빠의 하루업무를 망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빠에게 배가 아프다고 했다. 산부인과를 다녀왔는데 잘못된거 같다고 했다. 오빠가 괜찮다고 했다. 속상해 말라고 했다.
난 괜찮을 수 없었고 속상할 수 밖에 없었다.


오빠를 기다리며 주문을 외웠다.
'어차피 이리될거 일찌감치 잘 된거다.'
'또 임신하면 된다.'
오빠가 웃으며 안아줬다. 난 울었다. 잘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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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매한 내려놓음.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못난애미 코스프레도, 나만 겪는 신의 저주라 생각했던 기억도 희미해졌다.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첫번째 임신테스터기도 버린지 오래다.
웃기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악몽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매 달 내 몸이 임신이 아니라는 것을 찰떡같이 알아차렸고 더 이상 빨간 두줄을 확인하려고 생리예정일을 계산하지도 않았으며, 생리가 3~4일 늦어진다고해서 임신테스터기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도 완벽한 내려놓음은 없다. 그럴수가 없다.


# 신이시여.

화학적유산을 경험하는 사람이 30~40%나 된다고 한다.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태동을 느끼다 잘못되는 경우도 10~20%라고 한다.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고 넘기기엔 30%에 속했던 실망감은 겪어보지 못하면 가늠하기 힘들다. 안타깝게 10%에 속한 사람은 얼마나 버티기 힘들었을까.
'괜찮니? 괜찮을거야. 또 잘 될거야'하며 주제넘게 위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누구든 다시는 경험하지 않기를 빌고 또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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