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M09 18

나는 사람을 가려 만난다. 사람을 가려 만나는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는 
쓸 때 없는 소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정일 수도 있고, 물질적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불편한 소비가 발생한다.
나에겐 일반화되어 있지만 생각해보면 쓸 때 있고 없고는 지극히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이다.
사람은 언제나 변화하고, 인생은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변화하거나 상황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필요로 하는 매력 포인트가 달라진다.
나는 언제나 변화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또한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사귈 때 나의 판단기준은 현재 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위 개념은 나 이외의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그들 또한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고, 그로 인해 나랑 잘 맞았던 사람도
잘 맞지 않아질 수 있고, 잘 맞지 않았던 사람도 잘 맞을 수 있게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 적인 기준에 따라 사람을 가려 만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사람과 
인연이 될 가능성을 낮추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애초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한 것은 딱 하나다.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편한 것들은 주로 내가 세워 놓은 나의 기준에 맞는 것들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관심사가 전혀 다르며, 말투, 행동, 태도 등등등 
내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반복될 때 불편하다.
애초에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는 나의 '어떤 것'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편안함일 수도 윈윈 하는 관계일 수도
있는데 불편함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나는 살아오면서 나에게 불편함을 주었던 것들을 불편함의 기준으로, 긍정을 주었던 것들을 긍정의 기준으로 삼고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그것들이 전부 나에게서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나에게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내 수준 범위"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문제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며 나의 생각들이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나에게 발전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은 전부 나의 수준 범위 밖에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내 수준 범위"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굳게 지키는 것은 내 삶에서 보았을 때 발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제껏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의 수준 범위에서 살아왔다. 이것은 오늘로써 내 수준 범위의 발전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실제로 나의 인간관계는 썩 좋지 않다. 내가 사람들을 대하고 사람들이 나에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내 생각과 다를 때가 많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시 한번 내 수준 범위 안에서 인간관계를 했다는 것과 발전 없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수준 이상의 것은 나의 범위가 아니며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옳은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결국 내가 편한 것,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간관계는 내가 아는 것 즉 나의 수준 범위에 속한 것이고 이것에 부합하는 나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는 제자리걸음이거나, 내가 걸어가는 방향으로의 발전만을 기대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경험하고, 좀 더 폭 넓은 사고를 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것이므로,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게 옳다.
수많은 불편함 중 어떤 것이 옳은 불편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 현재 없는 것에 대해 깨달음을 줄 가능성이 높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내가 그랬다면 나 아닌 모든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이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과의 관계만을 추구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반면에 내가 한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생각해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알게 되는 이 과정은 모두가 생각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딱히 그럴 필요도 없기에
이렇게 해서 나는 나를 위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해하는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