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M09 29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 좋을까,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을 좋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좋아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상대가 좋아하는 게 아닐지라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한다. 하지만
내가 주는 것을 상대가 모를 때 그것이 나에게 상처가 된다. 언제나 기대하지만
그것을 정말로 모른다는 것이 증명될 때 정말로 느끼기 싫은 감정의 동요가 생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좋아하는 게 아닐 수 있고, 상대는 애초에 관심이 없기에 볼 수 없을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이고 나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이 많다. 앎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몰라 줄 때 상처가 된다.
기브 앤 테이크를 바라서 그런 건가?
내 마음을 점검해보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무언가 받지 않으면 서운하고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내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무의식적인 것과 관련이 있나? 바라지는 않지만 주면 받는 게 당연하다는 문화적 인식 같은 정말로 필요 없는데 암튼 그렇다.
가끔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통하지 않음을, 나의 친구들에게 통하지 않음을 느낄 때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결과는 언제나 거부감이 든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같은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같은 결과를 맞이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믿는 근거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하는 거다.
내가 모르는 것이거나, 상대가 좋아하는 것들은 나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주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불편하며 자연스럽지 않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은 결국 쌓이게 되어 있고, 폭발을 기다리는 시한폭탄과 같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게 진정한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건 애초에 옵션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안 하는 거지 그것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배제되어 있는 거 아닌가
없으면 없는 대로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꾸미고, 말을 신경 쓰고, 맞추고, 닫고
이러한 것들은 나에게 있어서 굉장한 감정 소모를 일으킨다. 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걸로 인식된다.
결국 관계든 일이든 뭐든 나를 위해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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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현재까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관계는 서로의 캐릭터가 대립하고, 그것을 관계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할 것은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이며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관점에서 상대의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것
나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과 상대의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것 모두 나를 위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영화 보리 & 매켄로를 보면
자신을 억누르고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보리에겐 열렬히 환호하고,
감정표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매켄로에겐 증오를 표시한다.
보리는 환호받는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고
매켄로는 증오받는 것에 불편함을 표현한다.
결국 훌륭한 경기로 인정받는 것처럼, 진심이라면 통하게 되어 있다.
내가 하는 것에 진심으로 집중하고 장인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