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M09 13

등 쪽이 미친 듯이 가려웠다. 손이 잘 닿지 않아서 억지로 팔이 꺾느라 2초-3초 정도는 가려움을 참은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굉장한 짜증이 났고 마침내 긁기 시작했을 땐 엄청나게 시원한 쾌락 같은 걸 느꼈다.
방금 양치를 하다가 이상한 것을 알게 되었다. 등을 긁었을 때에 쾌락은 결코 적지 않다. 쉽게 느낄 수 없는..
쾌락이라고 표현할 법한 정도의 강도였으나 머릿속엔 또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신기한 상황 아닌가?
나는 여러 경험을 통해 인간에게 표현되는 것들이 일관성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일관성이라는 것은 이것과 저것이 같은 뿌리를 둔다는 것인데 그것이 행동과 말, 말과 생리현상처럼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아도 일관된다는 것을 믿는다. 
너무 많아 증명해보진 않겠지만, 느낌적으로 확신한다.
가려움에서 비롯된 쾌락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을 나는 이것과 연결해보았다.
"고통에서 비롯된 쾌락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다. 왜냐면 다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헬스 트레이너를 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운동을 굉장히 싫어한다. 운동을 할 때 들여야 하는 노력과 고통
무게의 중압감에 대한 부담이 나에겐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에 속했다.
나는 트레이너들이 하는 말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매달 받는 월급이 그렇고, 고된 하루를 마치고 TV를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캔이 그렇다.
사람들은 고통에 기반한 쾌락에 기대어 살아가고, 그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일반론이 자리 잡은 것 같다.
나는 일반화되어 있는 저러한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가려움을 통해 역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쾌락을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닌가?
고통 후에 쾌락이어야만 가치가 생긴다면 인간은, 그리고 나는 고통을 다시 겪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고통 -> 쾌락의 패턴에서 커다란 쾌락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 싫다면, 그 쾌락이 온전히 쾌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증명되며, 고통에 쾌락이 상쇄되어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쾌락을 온전히 느낄 수 있거나, 더 좋은 쾌락을 느끼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까 그럴 것이다.
고통 -> 쾌락 패턴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 또한 원하는 패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데 
알맞은 예가 생각났다.
바로 "섹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를 누가 하고 싶지 않을까?
심지어 사랑하지 않아도 하고 싶고, 대상 자체가 없어도 혼자 자위행위를 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꼭 원하는 것이 없어도 원해야 하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도 원해야 하고, 아무것도 없어도 혼자 꿈은 꿀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