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M09 15

싯다르타를 읽고

"죽음이나 범천 에로의 회귀도 결코 미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그 근원은
모두 시간 아니고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즉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겨운 일과 모든 적대감이 제거되고 극복되는 것이 아닌가?"

(1)
살면서 많은 시간 낭비를 한다.
게임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머릿속에 남지 않는 무엇을 하는 것들이 그렇다.
이 시간 낭비는 결국 어떤 것에 대한 결과로 이어진다.
더 나은 결과 일수도, 더 낫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결코 이유 없는 행동은 무엇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회라는 것이 그렇다.
윤회라는 것은 게임을 하는 것과 같고, 티브이를 보는 것과 같다.
결국 윤회를 하지 않기 위한 윤회이며, 다시 윤회하는 것은 윤회하지 않기 위한 것에서 나쁘고
부족하기에 발전해야 하고, 발전할 것이 있음에 흥미로우며 나에게 아직 해야 할 것이 있음에 나쁘지 않다.
결국 궁극적인 목표가 윤회하지 않음이기에, 다시 윤회한다는 것은 살다 죽은 100년이
그저 게임과 같은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은 인간 삶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영혼의 관점에서 1번의 윤회는 그저 1시간의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으므로 허무를 낳는다.
나는 윤회했음에 감사하고, 윤회했음에 느낄 수 있는 것들에 충실하며, 윤회했음에 만족하고
윤회했음에 다시 한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겠다.
인간으로 윤회한 나는 결코 후회를 느끼지 못하며, 느낄 이유도 없다.
나의 영혼의 허무함은 외면하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으로
극한의 허무함 끝애 윤회하지 않음을 선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영혼의 허무함을 나의 것처럼 느낄 이유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이며 그렇기에 영혼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것은 그것 또한 허무하다.
영혼은 내가 아니며, 나는 그저 인간일 뿐
인간으로서 존재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 나의 목표이다.
나는 나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맞다.
(2)
강물은 언제나 흐르고
내 앞에 있는 이 강물은 어제의 강물이 아니며
미래의 강물이 아니다. 현재의 강물 일뿐
나의 인생 또한 과거에서 올라왔든, 미래에서 내려왔든
과거의 나 가 아니고, 미래의 나가 아니다.
언제나 현재의 나 가 있을 뿐,  과거나 미래에 벌어질 무언가를
나로 생각할 필요 없다.
언제나 현재 만이 있을 뿐,
언제나 현재의 해결과, 현재의 경험만이 있을 뿐
언젠가 명상에 대한 영상에서 그런 말을 했다.
명상의 원리는 간단하다고, 현재를 명확히 바라보는 것
머릿속을 채우는 이미 벌어졌거나, 벌어지지 않은 것들을 지우고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현재에서 온전히 사는 것
그것이 명상이라고 한다.
명상을 통해 이렇게 할 수 있게 되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데
똑똑해 지거나, 언제나 머리가 맑고, 여유로우며 등등등
결국 벌어졌거나, 벌어지지 않은 것들은 시간을 의미하고 머릿속에서 그것을 지우고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저기 싯다르타에서 말하는 시간을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 생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깊게 관심 가지고 찾아지는 모든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이뤄나가는 걸로 결정, 내가 원하는 거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