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을 잘 이해하면, 질문한 사람이 ‘애자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그런 경우 보통 즉답을 하기 보다 한 번 더 생각한다. 그의 사고에 맞춰서 내 생각을 답해줄 것인가? 아니면, 그의 생각 자체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할 것인가? 특히 그가 정의하는 ‘애자일’을 내가 포용할 수 없다면 갈등은 커진다.

내 애자일의 시작은…

간단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2007년은 대체로 내겐 끔찍한 경험들로 채워진 해였다. 고맙게도 당시 회사 선배가 2008년도에 시작하는, 내가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프레임워크 구축 프로젝트 영업을 하고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는 생각으로 2007년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프레임워크 구축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당연히 내 역할을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기술적으로 모든 문제를 책임지는 아키텍트를 맡을 것을 예상하면서… 하지만, 회사에서 내게 요구하는 역할은 프로젝트 관리자(PM)라고 한다. 도무지 말이 되나 싶고, 내 역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남이 하게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번째 프로젝트 관리자 경험속에서 비로소 애자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배운 내용은 프로젝트를 마친 후, 코엑스에서 열렸던 JCO 행사에서 발표한 기억이 있다. 발표 내용은 긴 장표로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몸으로 체험했을 뿐 단순명쾌한 글로 요약할 만큼 충분히 소화하기에 1년은 충분치 않았다.

빙산의 일각

그렇게 시작한 나의 애자일은 어느덧 10년차다. 이제는 그저 생활의 일부로 습관으로 삶에 침투해 있다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 그래서, 뭐라고 설명하기가 무색하지만… 새삼스러워도 노력을 해보자. 🙂
최근에 아래 그림을 어딘가에서 발견했다. 나에겐 여러모로 인연이 많은 그림이다. 처음 두드러지게 써먹었던 기억은 대충 2012년 즈음의 일이다. 개발 조직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곳에서 일종의 개발 플랫폼 혹은 데브옵스 툴을 만들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빙산의 일각(iceberg)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었던 익숙한 그림을 다른 사람이 다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보니… 신선하면서 감회도 새로웠다.
presentation
빙산의 일각
위 그림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바라보는 환상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애자일을 대할 때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겉으로 드러난 작은 조각만 보고 애자일을 말하거나 이해했다고 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요즘 내게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

그렇다면, 니가 정의하는 애자일은 무엇인가? 아쉽게도 아직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래도 시도해보자고… 스스로 독촉한다면
나는 애자일은 학습에 대한 이야기라고 용기를 내어 (다소 단편적으로) 말하고 싶다. 최대한 빠르게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용기 있고 효과적인 학습법이 어쩌면 요즘 내가 의미있게 생각하는 애자일이다. 그리고, 그 애자일에 익숙해지면 학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다. 습관처럼그렇게 사는 것이다.
presentation
과거에 유행하던 학습조직이란 말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를 시스템으로 만들고 지식경영을 주창하던 방식을 애자일이라고 부르긴 어려울 것 같다.

여러분의 애자일은?

내가 자주 써먹는 질문이다. 그간 애자일 관련해서 썼던 팝잇 글 정원관리도 해보자. 관련 글 링크를 남기면서, 가치가 떨어지는 글은 잡초를 뽑아내듯 정리한다.
  • 사용자 스토리 관련 글: http://bit.ly/2HAO6Hf
  • 아기 발걸음 원칙[1]: http://bit.ly/2tlglam , http://bit.ly/2FKFBJ1
  • 이 글의 전편이라고 볼 수 있는 글: http://bit.ly/2tOhx6r
위 내용을 정리하며, 불필요해 보이는 기존에 썼던 글 하나[2]를 삭제한다.

주석

[1] 애자일 제1원칙이라고 말하고 싶다.
[2] 安永会说的 “나의 애자일” 소개 라는 제목의 글을 삭제합니다.